지구가 평평하다면, 그래서 온도, 기압, 해수면 등등이 균일하다면 이 세상에는 바람도 불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여러 기후요소(climate drivers)가 불균등하기 때문에 자연계는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자연계에 내재한 변동성)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리적으로 반응함을 떠올려 보세요).
지구시스템의 평형유지활동중 하나가 적도에 늘 부는 바람(무역풍)의 세기입니다. 무역풍은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를 불규칙하게 반복하는데요, 무역풍이 유달리 강해지면 동태평양 바닷물이 서쪽으로 밀려나 그 빈자리를 바닷속 찬물이 채우게 됩니다. 이로 인해 동태평양은 온도가 낮은 웃목이 되고 동태평양에서부터 바닷물과 함께 밀려난 열이 흐르고 모인 서태평양은 뜨끈한 아랫목이 되는데 이 시기를 라니냐라 합니다 (이와 반대현상은 엘니뇨).
엘니뇨와 라니냐를 함께 일컫는 ENSO는 열대태평양상의 기후변동이지만 세계 여러 곳의 날씨에 두루 영향을 끼칩니다. 서태평양을 기준으로 볼 때 라니냐가 오면 평년보다 온도가 떨어지고 엘니뇨가 오면 평년온도보다 높아집니다 (지금까지 역대 무더위 기록은 엘니뇨 영향하에 있을 때 세워짐, 아래 그림은 엘니뇨 영향을 받은 겨울의 풍경).
이와 반대로 라니냐 영향권에 들었을 때 우리나라 겨울은 평년보다 추운 경우가 많습니다. 서태평양 주변에 비가 내린 후에도 열기가 남은 경우 저기압이 되어 북상하면서 시베리아기단을 끌어내리기 때문인데요 https://www.yna.co.kr/view/MYH20171010020800038
북극과 열대태평양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ENSO와 더불어 북극해빙과 북극진동의 영향까지 복합적으로 받는데요, 2021년 봄(3월)에 폭설이 내린 이유도 라니냐와 북극온난화가 겹쳤기 때문이었습니다. https://www.ekn.kr/web/view.php?key=20210302010000297
이처럼 ENSO는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보다 다른 요인과 함께 간접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엘니뇨나 라니냐 경보만으로 우리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수퍼엘니뇨나 수퍼라니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과 밀접합니다. 비근한 예로 2017년 여름 ‘히트돔’이 한반도를 뒤덮은 이유는 2016/2017슈퍼엘니뇨로 인하여 해양으로부터 대거 방출된 열기가 베링해 상공에 모여 저지(blocking)고기압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도 여름내내 (5월부터 9월까지)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빈발하였고 댐의 저수율이 30%까지 떨어졌었는데 이 시기 역시 강력한 엘니뇨와 때를 같이 합니다. 수퍼엘니뇨가 오면 서태평양 연안 (동북아, 동남아, 호주 등)연안이 매우 건조해져서 쌀, 설탕, 니켈, 보리 등이, 수퍼라니냐때에는 동태평양 연안의 가뭄으로 인하여 밀, 콩, 옥수수 등이 타격을 받습니다. https://www.cmegroup.com/ko/education/featured-reports/a-look-back-at-the-el-nino-of-2015-16.html#
1990이후 30년동안 있었던 국제곡물가격 폭등사태(1995, 2007, 2010, 2012...)는 모두 수퍼라니냐와 괘를 같이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2010/2011라니냐는 국제밀가격을 폭등시켰고 (애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한 밀에 의존하는 중동의 빵값이 일제히 올랐습니다. 생활고로 인하여 증가한 노점상중 한 명이 철거에 항의하며 분신,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이른 바 자스민혁명의 신호탄이 되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의 독재자들이 줄줄이 몰락하는 나비효과를 냇습니다.
이 당시 브라질산 옥수수(Safrinha maize)도 평년에 비해 27%나 적게 생산되었습니다. https://ahdb.org.uk/news/la-nina-could-drive-grain-markets-again-grain-market-daily
기후변화로 인하여 엘니뇨/라니냐라는 자연내재변동성의 진폭이 커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ENSO의 진폭이 커진다는 것은 이전 수퍼라니냐보다 더 강력한 몬스터라니냐가, 이전 수퍼엘니뇨보다 더 강력한 몬스터엘니뇨가 더 자주 발생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엘니뇨/라니냐의 발생을 미리 알려면 해양기후과학을 선도하는 전문기관들의 전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기관마다 전망이 각기 다른 경우가 많고 다수가 지지한 전망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적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미리 알기는 어렵다해도 지금 현재 엘니뇨/라니냐가 진행중인가 알려주는 지표는 있습니다. 열대태평양중에서도 서경120~170와 북위5도~남위5도 구간(이른 바 nino3.4)의 최근3개월간 표층수온과 평년평균과의 차이가 5개월 연속하여 섭씨0.5도 이상 나면 엘니뇨·라니냐가 온 것으로 간주됩니다.